모든 게 다 마음 먹은대로 될 수 없다는 걸 이제 막 배워서 들뜨던 차에... 사람이 하루 아침에 쉽게 안 변한다는 것도 추가로 배우고 그랬습니다. 제 얘기에요. 변하겠다고 마음먹고 떠벌린 반나절도 못견디고 전혀 변하지 않은 병크짓을 해버렸습니다.
도로 주워담을 수 없는 걸 주워 담으려고 하고 이미 깨진 걸 억지로 붙여보려고 하다가 엉망진창이 돼버렸죠. 정말 옛말에 틀린 거 하나 없음.
전부 다 얘기하자니 부끄럽고 누가 묻지도 않는데 혼자 모조리 털어놓고 읽는 사람 갑자기 꽁기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싶으니 (그것도 배웠어요. 요번에)
짧은 단어로만 얘기하자면 표리부동, 도망, 비겁함, 이중잣대 제발저려서 의심, 내 위주, 경솔함...등등.
...제가 이렇게 살았었어요; 부족한 인성.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그만 살자'고 막 맘을 먹고 시도해보려고 하자마자 성급함+서투름 때문에 요번에 제 손으로 다 망쳤고요. 방금 어찌어찌 하겠다 말을 해놓고선 욕심이랑 그런게 다시 화악ㅡ 치밀어 올라가지고.
머리로 알고 뉘우치는 거랑 직접 실천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이런 걸 해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무책임한 도망만 많이 치고...
그래도 다행인 건 여태까지는 멀찍이 도망쳐서 숨어놓고 혼자서 '분명 망했을거야 망했어@#$@#%@#' 이러면서 혼자 머릿속으로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다른 일까지 전부 팽개치고 그러다가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슬슬 내 탓 아니라고 다른 탓으로 돌리고 그랬다면
요번에는
비록... 굳이 안해도 될 일을 내가 스스로 저질러서 제 꾀에 제가 넘어가고...라고 말하면서 또 넘어가고. 원래는 없을수도 있었던 가장 두려워했던 최악의 상황을 내손으로 직접 실현 시켜버렸다는 가장 멍청하고 이상하고 유치한 짓을 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한 잘못이 뭔지를 알고 그걸 당한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들을수 있어서 직접 내가 확인을 했기 때문에 결과도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내탓이고 자업자득이고 납득되니까 속이 아프고 우울할 지언정 분하거나 억울하지는 않아요. 죄없이 당한게 아니라 내가 잘못해서 돌아온 건데.
최선은 아닐지 몰라도 나름 잘 된 일일지도 모르고요. 계속 안으로 숨긴채 겉으로만 유지하다가 더욱 결정적이고 치명적일때 터뜨리는 것보다. 적어도 이번 일 중에 한 가지 만큼은 내가 지금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현명했어도 결국엔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에...
물론 기분은 좋지 않죠. "얏호! 이걸로 하나 배웠어! 아ㅡ 뿌듯하다!" 마냥 이러지는 않죠...; 망친 내가 너무 바보 같고, 그러다가 내가 놓쳐버리고 나를 포기한 상대방들이 너무 크다보니...
그래도 혼자 숨어서 이것저것 상상하는 것보단 훨씬 낫더라고요. 전처럼 안에서 뭐가 콱 뭉쳐서 막혀있지 않고 그냥 때때로 화끈거립니다.
그리고 어쨌든... 오래 묵혀뒀던 가슴 속 가시같은 걸 드디어 빼냈고요. 그걸 막 성급하게 헤집다가 애먼 곳까지 건드려서 남에게 폐끼치고 상처가 더 벌어지긴 했지만;
포멧한 기분입니다. 정말 귀하고 소중한 자료도 뭉텅 날려서 속상하면서도 어딘가 꼬여있고 재부팅할 때마다 반복되던 내 머릿속 오류도 해결 됐으니깐
앞으론 더 조심하고 잘 할 겁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또 비슷한 잘못을 반복하겠지만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는게 아니다보니; 여태까지처럼 모르고 넘기던 것보다는 낫겠지 설마. 이제라도 알았으니 노력할겁니다.
그 왜, 거미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털이 부숭부숭한 큰 거미를 한번 손으로 꽉 쥐어보면 공포증이 없어진다고 했던가... 요번에 제대로 쥐어봤고요,
제 개인적 시행착오에 말려들어서 고생한 주변사람들에겐 그저 미안할 따름; 그리고 고맙네요. 그냥 질려서 싹 무시하고 가버릴 수도 있는데도 제대로 얘기 해주고 마무리를 해줘서. 이런 사람들을 놓쳐서 또다시 아깝고...
훨씬 과거에도 이랬더라면 좀 좋았을까 싶습니다. 이미 늦은 거, 가능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할머니가 될 때까지 모르고 못 고쳐서 쭉 비참하게 살수도 있잖아' 라며 위안삼고 있긴 하지만.
이런 얘기를 나눌 사람이 워낙 적다보니 (요것도 자업자득이지만) 하여간 어딘가에 속풀이를 하고 싶었어요. 그게 마음만 급하고 욕심만 많아서 부적절하게 튀어나오는 바람에 이번 일이 되버렸는데;
종이 일기장 같은데에도 써도 되지만 그러면 덜... 개운하더라고요. 나 혼자만 알 거면 뭐하러 따로 글을 쓸까? 란 생각이 들고.
근데 차라리 여기다 먼저 써서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아니지 지금 이 글 포함해서 종이나 메모장에다 쓰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
...하지만
이미 싸지른 것들은 돌이킬 수 없고
알면서도 여기다 올리는 건 그냥 누군가에게 나 한테 이런 일이 있었다 이렇게 반성했다 라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우연히 지나가는 분이라도 좋으니 증인이 있어줬으면 해서...
그동안 큰 일이 터지거나 급 멘붕이 올때마다 애처럼 밥 먹기 싫다고 굶은 적이 많았는데 (생각해 보면 그것도 진심이라기보다는 남이나 나에게 뭔가를 보여주려는 퍼포먼스였는지도;) 안 넘어가도 힘내려고 먹고 넘겨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평소엔 집에 없는 오랜지 쥬스가 아주 고맙더군요.
또...
갑자기 좀 다른 얘기인데
반면교사라고 내가 직접 해봤으니(...) 삼류악당스런 찌질함이나 답답함 비겁함 치졸함 등등을 창작에 더욱 잘 녹여낼 수도 있을것 같네요.
사실 이미 반영이 되고 있지만요; 내 성격이나 바램 같은게 만화 구석구석에 비집어 나오더라고요ㅎㅎㅎ; 생각지 못한 장면에서도 불쑥. 마치 이번 일을 예견한듯한 장면도 있었고요. 당시엔 그냥 생각나서 그렸을 뿐인데... 창작물이 그린 사람 닮는다는 얘기가 역시 그냥 나온 말이 아님;
내가 못나서 못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이나 내가 감히 누려볼수 없는 아주 괜찮고 멋진 일들을 캐릭터들에게 대신 시킬수도 있겠죠. 대리만족. 요런게 창작의 좋은 점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쟁이가 되길 잘했어.
어쨌든 큰 일이 있었지만 기운내고 그림은 계속 그릴 겁니다. 잠수 안 타. 이젠.
보시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리고 애증이긴 해도(...)나도 내 만화를 아끼니까 비커밍도 내친구 이야기도 끝까지 그려야죠. 마무리를 져야지.
댓글은 막았습니다; 사정 잘 모르는 분들께 위로나 동정 구걸하는 것처럼 보일까봐서요; 그런 거 아녜요. 내가 잘못한 거 가지고 위로받으면 비참함;;; 그냥 속풀이+다짐글이에요. 뭐라도 털고난 다음 다음 거 하려고.
더 나아진 사람이 되서 책임감 진솔함 용감함 같은 거 보강해서 더 나은 만화랑 그림 그리겠습니다.